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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9 혁명이 이룬 것...이승만 하야 등 '민주주의 이뤄'
-4·19 혁명, 무엇을 이뤘나
-4·19 혁명 58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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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4.19 혁명 58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사진=청와대)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김은수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수유동에 있는 국립 4·19 민주묘지를 참배했다.

오늘(19일)은 4·19 혁명 58주년이다.

국립 4.19 묘지는 1960년 4.19 혁명 때에 희생된 224분을 모신 곳으로 영령들을 기리는 기념탑과 기념관 등이 있다. 4.19 혁명 희생자 유가족, 4월회 회장 및 고문, 피우진 국가보훈처장과 청와대 관계자들과 함께한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전 대형 태극기에 경례한 후 4.19 기념탑으로 이동했다.

기념탑 앞에 선 대통령은 ‘대통령 문재인’ 명의의 화환을 헌화한 후 3번 분향 하고 일동과 함께 묵념했습니다. 참배하고 나오는 길에 다시 도열병이 든 태극기 앞에 선 대통령은 다시 한 번 국기에 대한 경계로 예를 갖췄다.

대통령은 기념탑 앞 방명록에 ‘4.19 혁명의 정신으로 정의롭고 공정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2018. 4.19 대통령 문재인’이라고 서명했다.

참배 후 대통령은 4.19 유가족들을 만나 한 명씩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다. 유가족들은 다가오는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하고 4.19 유가족에 대한 관심도 당부했다.

4.19 혁명은 1960년 4월 19일 학생과 시민이 중심 세력이 되어 일으킨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이다.

이승만 정권은 1948년부터 1960년까지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 불법적인 개헌을 통해 12년간 장기 집권하였다. 그리고 1960.3.15 제 4대 정 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 실시된 선거에서 자유당은 반공개 투표, 야당참관인 축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발표 등 부정선거를 자행하였다.

그러자 같은 날 마산에서 시민들과 학생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당국은 총격과 폭력으로 강제 진압에 나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무고한 학생과 시민을 공산당으로 몰면서 고문을 가했다.

이후 1960.4.11 1차 마산시위에서 실종되었던 김주열 군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참혹한 시체로 발견됨으로써 이에 분노한 시민들의 제 2차 시위가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1960.4.18 고려대학교의 4천여 학생은 "진정한 민주이념의 쟁취를 위하여 봉화를 높이들자"는 선언문을 낭독, 국회의사당까지 진출하고 학교로 돌아가던 중 괴청년들의 습격을 받아 일부가 피를 흘리며 크게 부상당했다.

이에 분노한 전국의 시민과 학생이 다음날인 1960.4.19 총 궐기하여 "이승만 하야와 독재정권 타도 "를 위한 혁명적 투쟁으로 발전하여 독재정권은 총칼을 앞세운 무력으로 탄압하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다.

1960.4.25 독재정권의 만행에 분노한 서울시내 각 대학 교수단 300여명은 선언문을 채택하고 학생, 시민들과 시위에 동참하였고 1960.4.26 전날에 이어 서울 시내를 가득 메운 대규모의 시위군중은 무력에도 굽히지 않고 더욱 완강하게 투쟁하여 이승만은 결국 대통령직에서 하야했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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