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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보다] 손석희 그리고 MBC의 25년...시대 역행하는 공영방송 '좋은 친구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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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노조파업 당시 구속된 손석희 앵커=MBC 노조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문다영 기자] “푸른색 수의를 입고 만면에 웃음을 띄던 손석희의 얼굴은 언론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었다.”

지난 19일 한국아나운서연합회가 MBC 아나운서들의 사장 퇴진 요구 성명서에 낸 지지 입장 중 한 문구다.

1992년, MBC노동조합은 파업에 나섰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후 MBC ‘PD수첩-농촌 이대로 둘 수는 없다’ 편이 불방되면서 시작된 농성은 2년 여를 끌었고 결국 MBC 노조는 파업을 선언하며 공정방송장치, 해직자복직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경영진 요청으로 서울 여의도 MBC본사 내부에 공권력이 투입됐고 노조집행부였던 손석희 앵커는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됐다. 그는 그곳에서 20일간 독방에 갇혀 있었다. 그가 수감됐던 곳은 9동하25방. 형광등을 끄려 했지만 스위치조차 없었다. 당시에 대해 손석희 앵커는 자신의 저서 ‘풀종다리의 노래’에서 “감옥이 내게서 박탈해간 자유 중에 가장 나를 안타깝게 한 것은, 파업집회가 열리고 있는 길거리에서 내가 조합원들과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파업이 시민들의 지지로 MBC 노조 승리로 끝난 후 가진 인터뷰에서는 “나이가 든다고, 지위가 달라진다고 해서 제 자신을 바꾸는 일은 없을 겁니다”라고 확고한 소신을 밝혔다.

25년이 흐른 뒤 MBC는 더욱 심각한 상황에 처했다. MBC 아나운서 29명은 “‘만나면 좋은 친구’는 어디로 갔을까. 10명이 해고되고 80여 명이 정직 이상의 중징계를 받았다”며 김장겸 사장과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뒤이어 MBC 예능국 PD들이 “웃기기 정말 힘들다. 웃기는 짓은 회사가 다 한다”면서 노래 한 곡, 자막 한 줄까지 검열하는 현 상황을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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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진요구에 휩싸인 김장겸 MBC 사장=MBC



■ 퇴진 요구 받은 김장겸 사장, 노조와 오랜 기싸움

논란의 중심에 선 김장겸 사장은 지난 2012년 MBC 노조가 작정하고 파업했던 당시에도 정치부장으로서 편파적 보도를 했다는 비난에 휩싸였다. 당시 MBC 노조 측은 김장겸 정치부장이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중심으로 아름다운 장면만 내보내는 편파보도를 했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내곡동 사저 보도, 박원순 시장 후보와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편파보도, 김선동 의원의 최루탄 사건 등까지 지적했다. 당시 김장겸 정치부장은 파업으로 인해 타사처럼 보도할 여력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노조는 “MBC 정치 뉴스의 ‘공정성’은 김장겸 부장이 정치부장 자리에 앉은 그 순간부터 철저히 파괴됐다”고 반박했던 터다.

특히 당시 MBC 노조는 “김장겸 정치부장은 MB 정권 들어 사건팀장과 국제팀장, 네트워크부장, 사회1부장, 생활과학부장 그리고 정치부장까지 무려 6개의 부장 자리를 거쳐 왔다. MBC 50년 역사에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경이적인 기록이다. 역대 ‘최다 부장 역임’이라는 진기록을 세운 것은 김 부장만의 편파보도 비결에 따른 것인가”이라며 김장겸 부장이 파업의 배후이자 원흉이라 비판했다. 당시 파업 여파로 노조 파업에 동참했던 최일구 앵커, 문지애 아나운서, 오상진 아나운서 등 MBC 간판 아나운서들이 도미노 사직했다.

오래 전부터 MBC 노조의 반발의 중심에 서 있던 김장겸 사장은 지난 2월 MBC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런데 촛불집회, 탄핵정국을 지나 새 정부가 시작되기까지 과거보다 더한 압박이 있었던 듯 보인다. 오죽하면 예능 PD들을 비롯해 방송국 내에서 가장 목소리를 내기 꺼린다고 알려진 아나운서들까지 나서 조목조목 지적하고 규탄하고 나섰을까. 그 흔적은 곳곳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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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PD 페이스북 라이브



■ 보복성 인사? '뉴스데스크' 앵커 교체, 인기 드라마 PD 대기발령

지난해 12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청와대와 대통령을 옹호하는 보도로 인해 ‘청와데스크’라는 비판을 받았던 MBC ‘뉴스데스크’ 주말 앵커 박상권 기자가 비제작국으로 발령났다. 보복성 인사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박상권 기자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및 촛불집회를 적극 보도하지 않는 것에 대한 항의 표현으로 당시 앵커직 사의를 표했다. 보직사의 표명 후 박상권 기자는 앵커로서 마지막 방송에서 “시청자 여러분께서 MBC뉴스에 보내주시는 따끔한 질책 가슴 깊이 받아들이고 있다”며 “언론 본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책임감을 느낀다”고 소신 발언을 남겼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보수단체 일각에서는 “광화문 보수집회방송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MBC 앵커가 물러났다. 항의전화를 하자”는 사실과 다른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지난 2012년 한차례 대기발령을 받았던 김민식 PD는 지난 14일 또다시 징계 전단계인 대기발령 조치를 받았다. MBC 사내에서 “김장겸 사장은 물러나라”고 외쳤다는 이유다. 특히 김민식 PD는 지난 2일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김장겸은 물러나라”고 외쳤고 이는 큰 화제가 됐다. 이는 MBC본부 조합원들이 개최한 집단적 '페이스북 라이브'로도 이어졌다.

이후 MBC는 “사내에서 사장퇴진의 고성을 수십차례 외쳐 업무방해 및 직장질서 문란 행위를 했고, 소속 부서장의 경고에도 해당 행위를 지속한 사안에 대해 인사위 회부 요청이 있었다”면서 “동일한 행동이 반복될 경우 방송에 심각한 차질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어 일단 업무에서 배제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김민식 PD는 방송에 심각한 차질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일까. 그는 교양 시사 PD도, 보도국 PD도 아니다. ‘뉴논스톱’(2000), ‘논스톱3’(2002), ‘레인보우 로망스’(2006), ‘내조의 여왕’(2009) ‘여왕의 꽃’(2015) 등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시트콤, 드라마 PD다.

가장 최근인 지난 17일에는 MBC ‘뉴스데스크’ 주말 앵커가 사회부 소속 이준희 기자에서 정치부 천현우 기자로 교체됐다. 이에 이 기자가 지난 8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재판 관련 리포트와 관련, 부당한 지시에 따르지 않아 갈등이 있었다며 또다른 보복성 인사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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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뉴스데스크' 앵커로 나섰던 박상권 기자=MBC



■ 설문조사 자유한국당 지지층, 70대 이상만 “MBC, 공영방송 역할 충실”

지난 2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뷰'가 발표한 설문조사(5월 28~31일, 전국 만 19세 이상 휴대전화 가입자 1050명 대상, ARS 자동응답시스템 이용한 임의걸기,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0%포인트, 응답률 5.5%)에 따르면 대중은 KBS와 MBC가 박근혜 정권 때 역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인식한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KBS와 MBC가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공영방송 역할에 충실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74%로 충실했다는 응답 21%의 3배를 뛰어넘는 수치를 보였다. 충실했다는 답은 70대 이상(54%), 자유한국당 지지층(64%)에서만 높았고, 이들을 제외한 모든 계층에서 부정 응답이 나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KBS-MBC 사장과 이사진 거취에 대한 질문에도 '공영방송 위상 회복을 위해 퇴진해야 한다'는 답이 67%였다.

그러나 MBC는 현 상황에 대해 “정치적 집회를 중단하고 노동조합 본연의 의무에 충실하라”며 “정치적 사내 집회에 대해서는 법과 사규에 따라 엄정대처할 것”이라는 공식입장을 냈다. 노조의 언행을 ‘정치적’이라 재단한 것이다. MBC는 또 “노동조합의 조합 활동은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면서 “특정인에 대한 인신공격성 피케팅이나 대표이사 퇴진을 집단으로 외쳐대는 것이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최근 일부 정치권 인사의 회사 대표이사 사퇴 요구 발언과 맥을 같이하는 사실상 ‘정치집회’”라고 꼬집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공정방송’은 언론노동자의 '근로조건'이라는 판례가 이미 2014년에 나온 바 있다는 것이다.

법원은 2012년 MBC 노조의 170일 파업에 대해 “공정방송은 노사 양측의 의무임과 동시에 근로관계의 기초를 형성하는 근로조건에 해당하고, 공정성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과 준수 여부는 노조법에 따른 단체교섭 사항”이라면서 MBC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2심까지 같은 결론이었고 대법원의 최종 선고만 남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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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점심시간 MBC로비에서 100여명 넘는 구성원들이 “김장겸은 물러나라”를 외쳤다=김연국 본부장 페이스북 라이브



■ 무엇을 위한 퇴진요구인가

MBC 간판 앵커였던 최일구 전 앵커는 tvN을 거쳐 민주종편TV 앵커로 활동 중이다. 오상진 전 아나운서는 방송인으로 변신,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출연했고 현재 tvN ‘프리한 19’ JTBC ‘차이나는 클라스’ 등에 출연 중이다. 문지애 전 아나운서도 FNC 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활발한 MC 활동을 펼치고 있다.

MBC 간판급 인물들은 MBC의 상황에 고개를 내저으며 정든 직장을 떠났다. 그나마 이들은 유명인이라 더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것이 눈에 보이지만 MBC 노조로서 파업에 동참했던 수많은 이들은 ‘공정방송’을 외치며 부당한 대우와 싸우고 있을 것이다. MBC가 주장과 달리 이들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밥줄을 걸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MBC 방송의 세세한 면면을 모르는 이라도 알 수 있을 정도다. 직장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오히려 밥줄보다 자신이 일하는 곳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싶다는 희망이자 소망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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