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욜로열풍] ④ 환상과 허상 사이 '욜로의 덫'...날카로운 '무한도전'은 뭐라고 지적했나?
이미지중앙

'주말엔 숲으로' '어느날 갑자기 백만원' '다이아's 욜로트립' '배틀트립'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등 욜로 소재 예능프로그램 포스터


취업난’ ‘취업삼수’ ‘컵밥’…캥거루족(성인이 되고도 부모 품을 벗어나지 못하는)을 대변하는 단어들은 이제 생소하지 않다. 만20세부터 성인 대우를 받지만 본격적으로 성인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나이는 점점 늦어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3포, 4포 세대’라는 신조어도 등장했고, 혼족(혼자살고,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마시는) 문화 또한 급증했다. 성인이 된 후 취업 관문에서 생애 첫 좌절은 겪은 이들이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낸 문화는 웃프다. 취업, 연애와 결혼 그 뒤를 잇는 출산까지를 포기하하는 불확실한 미래의 반사현상으로 일어난 문화가 ‘욜로’다. 한번 뿐인 인생, 나를 위해 사는 '욜로' 라이프는 긴 좌절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의 구미를 당길 수밖에 없다. 라이프스타일부터 방송 문화계까지 우리의 일상으로 파고든 '욜로' 열풍을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문다영 기자] ‘오직 한번 뿐인 인생’이라는 말은 그 자체만으로도 쳇바퀴 같은 인생을 사는 이들에게 설렘으로 다가온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달리며 순간순간 자신의 삶을 잃었다는 허망함과 싸워야 하는 이들로서는 자신을 위한, 현재를 위한 삶을 살라는 말은 치명적인 유혹이나 다름없다. 이 한결같은 열망은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 순간을 잡아라, 현재를 즐겨라)” “씨즈 더 데이(seize the day·오늘을 즐기다)”를 지나 ‘욜로(YOLO)’로 이어지고 있다.

욜로(You Only Live Once)의 뜻 그대로 인생은 한번 뿐이다. 여기에 각박한 세상살이가 ‘욜로’ 열풍에 불을 지폈다는 해석도 나온다. 1인가구가 증가하면서 자신을 위한 삶을 사는 사람이 늘었고 자신을 향한 투자를 아끼지 않게 됐다는 것.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 2017’에서 정부의 문제 해결 능력을 불신하고 각자 살아나갈 방법을 모색하는 각자도생의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믿을 건 나밖에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 ‘욜로(YOLO)’ 라이프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자기지향적 트렌드는 ‘욜로’라이프와 업그레이드된 제품의 가치를 즐기는 ‘B+프리미엄’, 혼자 먹고 혼자 노는 1인 소비 ‘1코노미’, 경험이 곧 경쟁력이자 상품이 되는 ‘경험 is 뭔들’ 등 트렌드와 연결된다고 봤다.

■ "욜로하다 골로갔다"...'무한도전'의 일침 되새겨야

이러한 트렌드에 맞춰 방송가는 ‘욜로’에 푹 빠졌다. OtvN ‘주말엔 숲으로’ KBS2 ‘배틀트립’, 올리브TV ‘원나잇 푸드트립: 먹방 레이스’ ‘어느날 갑자기 백만원’, 온스타일 ‘다이아’s 욜로트립’ 등 우후죽순 ‘욜로’풍 프로그램들이 생겨났다. 출연진들의 ‘욜로’ 경험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과 함께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가벼운 웃음에서 한 발 벗어나면 현실적으론 남의 일일 뿐인 ‘욜로’만이 드러난다. 더욱이 본래 의도와 다르게 좋은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돈을 쓰는 모습이 여유 있는 이들의 팔자 좋은 한 때로 비춰지는 프로그램들이 늘어나면서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소비 조장 프로그램” “돈이 있어야 가능한 ‘욜로’”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도 “한국에서 욜로는 주로 소비 상품과 연관이 됐다. 욜로를 그저 놀이와 여흥의 관점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아쉽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나마 MBC ‘무한도전’의 욜로라이프 특집이 ‘욜로’를 다르게 다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작진은 멤버들에게 한도가 정해진 카드를 전달했고 멤버들은 자신만 아니면 된다는 마음으로 신나게 돈을 썼다. 그 뒤 폭탄을 맞았다. 카드 한도액이 넘어 유재석이 거액의 사용액을 내야 했고, 애초에 카드에 있던 돈도 멤버들이 10년간 낸 지각비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무한도전’은 ‘욜로’ 라이프에 수반되는 리스크를 짚어줌으로써 여타 예능 프로그램들과 차별화를 뒀다. 유재석의 “욜로하다 골로 갔다”는 말 한마디는 ‘무한도전’의 ‘욜로’특집 의도를 정확히 표현한 동시에 방송가가 부풀려 놓기만 한 욜로에 대한 환상을 꼬집은 것이기도 했다.

이미지중앙

MBC '무한도전'이 다룬 '욜로' 비틀기



문제는 방송가의 ‘욜로’ 키워드 소비가 오직 여행, 취미, 쇼핑 등의 소재로만 이용된다는 점이다. 욜로 라이프란 단순히 충동소비나 1인 여행이 아니라 삶을 바꾸는 경험을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임에도 요즘의 방송가는 오직 소비하는 소재로만 접근하며 새로운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방송 전문가들은 “예능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는 데 입을 모은다.

유진모 문화평론가는 “예능이 중요하다”면서 “예능이 욜로를 대하는 자세가 교양적일 것까지는 없지만 예능에서 시점을 넓혀나가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소비적 부분이 아니라 그들의 내면세계, 가족관계, 친구관계 등을 조명하며 삶의 지향점을 정하고 방향성을 정하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래설계보다 오늘에 만족하자는 풍조로 변질된 ‘욜로’의 삶이 개개인의 예술성과 창의성을 높일 수는 있겠지만 ‘현재’의 ‘자신’에 매달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과 책임감은 물론이고 과거와 미래를 놓치면서 결과적으로는 정서적인 가뭄에 시달릴 수 있다는 우려도 덧붙였다.

■ 소비보다 삶의 질에 초점 맞춰져야

‘욜로’는 핫하다. 많은 이들이 ‘욜로’ 라이프 스타일을 따르고 싶어 한다. 한 취업포털이 20대~30대 성인남녀 83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욜로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생각’ 설문조사 결과, 대부분인 84.1%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 이유로는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서’(60.7%)를 가장 많이 선택했고, ‘자기 주도적 삶을 살 수 있어서’(55.4%),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생각인 것 같아서’(30.7%), ‘열정적인 것 같아서’(23.5%), ‘도전정신이 있어 보여서’(20.9%) 등 답변이 이어졌다.

개인의 삶이 지향하는 모든 긍정적 면을 담고 있는 ‘욜로’는 즐거울 터다. 다만 단서를 달아야 할 것 같다. 소유 욕구를 위한 소비가 아닌 삶의 질을 향한 투자다. 이에 따라 방송가 역시 오직 소비를 위한 ‘욜로’ 행보를 바꿔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천편일률적으로 쏟아진 ‘욜로’ 예능은 이미 식상해졌고, 더 이상의 재미도 감동도 없다.

유진모 문화평론가는 인터뷰 말미 이런 얘기를 전했다. 방송가가 소비하는 ‘욜로’, 이로 인해 불나방 같은 인생쯤으로 비하되기도 하는 ‘욜로’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말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역시 행복에 대한 개념이 있었다. 에우다이모니아(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데서 오는 행복)라는 말이다. 1차원적 행복은 헤도니아(자기 중심적 행복), 에우다이모니아는 고차원적 행복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그 먼 옛날에도 행복의 추구권과 방식은 사람들의 고민거리였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너무 1차원적 행복으로 퇴보하는 느낌이다. 그 중심에 방송이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나혼자 산다’ 등의 1인 관찰예능부터 ‘먹방’ ‘육아 예능’ 등 모두가 본인들이 잘 먹고 잘사는 것을 보여주는 것 밖에 없다.”

실제 국내 대부분의 예능프로그램들이 다루는 ‘욜로’의 개념은 미래를 기약하며 목마른 하루를 지속하기보다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자는 본뜻과는 동떨어져 보인다. 그동안 힐링, 먹방 등 트렌드의 중심에 섰던 방송가의 현명한 변화를 기대해본다.

cultur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