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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9혁명 희생자, 최루탄 눈에 박힌 채 사망 등 ‘참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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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57주년을 맞아 유족들이 희생자를 참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박진희 기자] 4.19혁명 57주년을 맞아 각 당 대선 후보들이 국립 4.19 민주묘지를 찾았다.

각 당 후보들은 4.19 참배에 있어서는 당론도 경쟁도 떠나 희생자 추모와 개혁 의지를 다졌다.

시사상식사전에 따르면 4.19는 1960년 4월 19일 학생과 시민이 중심 세력이 되어 일으킨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을 말한다.

이승만 정권이 불법적인 개헌을 통해 12년 동안 장기집권하자 시민들과 학생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인 일이다.

1960.3.15 제 4대 정 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 실시된 선거에서 자유당은 반공개 투표, 야당참관인 축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발표 등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그러자 같은 날 마산에서 시민들과 학생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이자 당국은 총격과 폭력으로 강제 진압에 나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 과정에서 무고한 학생과 시민을 공산당으로 몰면서 고문을 가했다.

이후 1960.4.11 1차 마산시위에서 실종되었던 김주열 군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참혹한 시체로 발견됨으로써 이에 분노한 시민들의 제 2차 시위가 일어났다.

1960.4.18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진정한 민주이념의 쟁취를 위하여 봉화를 높이들자"는 선언문을 낭독, 국회의사당까지 진출하고 학교로 돌아가던 중 괴청년들의 습격을 받아 일부가 피를 흘리며 크게 부상당했다.

이에 분노한 전국의 시민과 학생이 다음날인 1960.4.19 총 궐기하여 "이승만 하야와 독재정권 타도 "를 위한 혁명적 투쟁으로 발전하여 독재정권은 총칼을 앞세운 무력으로 탄압하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1960.4.25 독재정권의 만행에 분노한 서울시내 각 대학 교수단 300여명은 선언문을 채택하고 학생, 시민들과 시위에 동참하였고 1960.4.26 전날에 이어 서울 시내를 가득 메운 대규모의 시위군중은 무력에도 굽히지 않고 더욱 완강하게 투쟁하여 이승만은 결국 대통령직에서 했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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